하나님의 약속을 위한 자구책
아브람이 75세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하기까지의 여정에서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후손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후손으로 롯을 생각하기도 했었고, 엘리에셀 (창 15:2)이라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님을 강조하시며 하나님께서 후손을 주신다고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 시절에 자녀가 없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그 후손을 통하여 계속 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람에게 후손이 없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부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 정말인가, 하나님께서 이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이 확실한가 하는 주위의 시선이 더욱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온 땅에 가득차게 될 후손을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의 첫 단계가 이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래는 더욱 마음의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아브람보다 더 다급해진 사래는 자신의 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내주며 아들 갖기를 시도하였습니다. 옛 중동의 관습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은 남편에게 자신의 몸종을 줄 수 있었습니다(29:29; 30:3-13). 몸종은 여주인의 무릎에 있는 한, 그 몸종에서서 난 아이는 여주인의 아이로 여겨졌습니다 (30:3). 하갈은 곧 아브람의 아이를 잉태하게 되자 자신의 위치를 잊고 사래를 무시하였습니다. 하갈의 무시를 당하자 사래는 아브람에게 아브람이 처신을 잘못하여 하갈이 자신을 무시하므로 아브람이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채근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사래로 하여금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일임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사래의 학대가 심해지자 하갈은 사래로부터 도망하였습니다. 사래의 작전계획은 완전히 허틀어지고 말았습니다. 문제해결보다는 더 큰 문제가 늘어났을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자구책은 결코 제대로 이룰 수 없고 문제만 가중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고 있습니다.
졸지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자 하갈은 당황하게 되었고 자신을 보호하여 줄 존재가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 뒤 생각없이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절망의 상태에 있는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에게 다시 사래에게로 돌아갈 것을 후손에 대한 축복과 함께 권면합니다.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주었습니다. 그의 이름 이스마엘 (하나님이 들으셨다)은 하나님께서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사실을 평생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의 고통 중에도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드디어 아브람 나이 팔십 육세에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상처 뿐인 영광이었습니다. 아들의 출산을 기뻐하지만 한편으론 어둔 그늘이 그 앞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사람의 자구책이 갖는 한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임성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