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놀라움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행 2:6-8)
세상의 문화: 분열의 단초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남겨지기를 원한다. 창세기 11:4 에서 사람들은 높은 성을 쌓아 하나님의 또 다른 물의 심판으로부터 피하고 그것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움을 받고자 하였다. 이름을 남기는 일은 이미 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창 4:17).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Jr를 붙여 자식에게 물려 주기도 한다.
바벨이라는 성을 쌓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흩어짐을 면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위대함을 세상에 남기기 위하여 그들의 이름을 바벨이라는 명칭에 담아두기를 원하였다. 창세기 10장의 말미에 이미 인류에게는 셈의 자손임에도 지역에 따라 지방의 방언이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창 10:31).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규모를 확장하면서 언어를 포함한 문화창조를 이루어 나갔다. 그들은 통일을 통하여 강해지고 자신들의 기념물을 건설하려고 한다. 그들의 문화창조는 이전의 가인과는 달리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한다 (창 11:4). 사람의 힘이 한데 모아지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성령의 언어: 세상을 하나되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알리는 사건이다.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다. “영”이라는 낱말은 입김, 호흡, 바람, 폭풍을 뜻한다. 모든 사람들이 폭풍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위력있고 놀라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바람과 함께 강력한 불꽃이 휘몰아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성령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방언으로 밀할 수 있게 하신다. 사도행전 1:8에서 예언하신 그 말씀이 오순절에 성취되었다.
방언은 또 다른 설교
성령은 하나님의 큰 일을 기쁨이 충만함으로 찬양하게 하신다. 또한 성령은 그 방언 (언어 기적)을 통하여 모든 참석자들에게 말뜻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선사하셨다. 누가는 본문의 방언을 언어적인 의미로 강조한다. 방언을 설교로 이해한 것이다. 루터는 “방언으로 말하다”를 “다른 언어로 설교하였다”로 번역하였다. 성령충만 받은 성도들이 사람의 경험으로는 느낄 수 없는 천상의 활홀경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언적 설교를 하였다. 우리가 사모하여야 할 공적인 설교의 아름다우면서도 능력있는 설교의 모형일 것이다.
방언은 복음전파의 도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역만리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이 익숙한 언어의 예언적 설교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대인, 유대교로 개종한 자, 이방인 등 많은 사람들도 이 에언적인 복음의 설교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 거기에 포함된 것은 “서쪽과 동쪽으로부터, 바다와 광야로부터 온 사람들” 을 의미하는 모든 족속을 포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방언은 성령에 의한 예언적 설교로서 모든 사람들의 언어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위대한 은사이다. 사람 사이, 민족 사이에 있는 언어와 이해의 장벽을 극복하고 하나의 통일된 인류로 모두를 한데 이끌어감은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기도 하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바벨론에서 사람들을 흩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순절에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으신다. 이것이 방언의 놀라움이다.
임성진 총장